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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1 해운업계와 은행의 연결고리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3374386.html?ctg=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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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인근 해협 아덴만은 해운회사엔 공포 지역이다. 해적 출현이 잦기 때문이다. 국제해사국(International Maritime Bureau)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아덴만 인근에서만 63건의 해적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국내 해운업계에는 소말리아 해적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바로 은행이다. “완전히 끊겼어요. 배를 발주했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아요. 선수금 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도 안 해주죠, 가뜩이나 수출도 안 좋은데 금융기관이 신용장(L/C)도 안 열어줘 해운업이 다 망하게 생겼다니까요.”

한 중견 해운업체 사장의 얘기다. 그는 “국내 해운선사가 165개 정도 되는데 만약 이런 상태로 6개월만 가면 60~70%는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해운회사 부사장은 “세계 금융위기로 시작된 해운업황 급락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최근 3개월 사이에 수주 받았다 취소된 선박 수가 국내 조선소에서만 100척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 쪽에서 수주 취소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국내외 선주들의 취소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상훈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선박 금융시장이 마비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발주는커녕 수주 취소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이나 대한, STX의 3분기 실적이 괜찮으니까 큰 위기로 안 보이는 측면이 있는데, 해운업 사정이 급락한 것은 9월부터”라며 “아마 대부분 해운회사의 4분기 실적은 최악일 것”이라고 전했다. 메이저급 해운사의 한 임원은 “이 바닥에 들어온 지 20년 만에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너무 좋았다가 지금은 모두 비정상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해운업계가 얼마나 좋았고, 지금은 얼마나 나쁘다는 것일까? 모 해운회사 부사장의 얘기다.

“그동안 해운회사는 큰 곳, 작은 곳 할 것 없이 정말 돈 많이 벌었어요. BDI(부정기 건화물선 운임지수)가 세상에 1만1000포인트대를 찍었잖아요. 솔직히 비정상적이었죠. 업황이 너무 좋으니까 배를 빌려주는 용선료도 엄청나게 올랐었죠. 배 하나를 가지고 브로커가 10곳도 넘게 붙어 마진을 남기고도 수요가 많았으니까요.”

사실이다. BDI가 최고점을 찍은 것은 지난 5월 20일이었다. 지수 1만1793포인트였다. 1985년 1000으로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였다. 이후 6월 중순 1만이 깨졌고, 7월 중순 9000대로 내려갔다. 이마저도 엄청난 수치였다. 문제는 9월부터였다. 그야말로 폭락이 시작됐다. 9월 11일 5000 붕괴, 9월 26일 3000 붕괴, 10월 2일 2000 붕괴였다. 지난 11월 4일 BDI는 814다.

해운회사가 배를 빌려주고 받는 용선료도 그렇다. 업계는 “15만~20만t짜리 하루 용선료가 20만 달러까지 갔다가 현재는 5000달러 정도”라고 말했다. 17만t급 벌크선의 경우 6개월 임대에 한 달 전만 해도 12만 달러 안팎이었다. 그마저도 대폭 내려간 가격이었다. 현재는 3만 달러도 안 된다.

컨테이너선도 한 달 사이 40~50% 이상 용선료가 하락했다. 올 상반기에는 배 하나에 브로커 10곳, 많게는 20곳 가까이 붙어 마진을 남겼다고 한다. 가령 배 한 척을 A사가 B브로커(해운 중계회사)에 1만 달러에 빌려주면 B사는 2000달러 정도 마진을 남기고, C브로커 역시 비슷한 마진을 남기고 D사로 넘기는 것이다.

K해운의 한 임원은 “이런 식으로 브로커가 중계하면서 최초 1만 달러에 임대한 배를 마지막 사용자는 2만5000달러 정도에 빌리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15년 정도 된 중고 선박 가격이 막 조선소에서 나온 배 가격과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5대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지면서 축제는 끝났다.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려버린 금융기관이 결정적이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이번 사태는 해운사고가 아니라 금융사고”라고 항변하는 까닭이다. 대부분 산업이 그렇지만 해운업은 금융의 도움 없이는 비즈니스 자체가 어렵다. 가령 해운회사가 선박을 발주하면 건조비의 80%가량을 금융권에서 조달한다. 하지만 현재 이게 완전히 끊겨버렸다. 이 때문에 조선회사에 선수금을 준 해운회사는 중도금을 내지 못해 발주를 취소하고, 선수금만 떼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발주 선박 5% 취소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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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국내외 조선소에 발주한 물량은 현재 330척 정도다. 액수론 26조원(11월 5일 원-달러 환율 1330원 기준) 규모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운전문 경제지인 ‘십핑 이코노미스트(Shipping Economist)’에 따르면 보수적인 예측으로도 전 세계에 발주된 선박 중 약 5%는 취소될 위험이 있다. 느닷없이 동맥이 막힌 해운업계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국내 10위권 해운회사의 임원은 “상반기까지 다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대부분 배를 발주하는 등 재투자를 했는데 갑자기 금융권이 문을 걸어버리니 돈 흐름이 막힌 것”이라고 항변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C&그룹 관계자 역시 “모 은행이 돈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는데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 결정적으로 유동성이 막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은행이나 보험회사 등 금융권이 선박 리스나 수주 때 필수적인 선수금 환급보증을 끊은 것도 타격이 컸다. 문제는 현재로선 국내 금융권이 해운업계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환란은 면했다지만 아직도 금융권은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건설·중소기업 등에 비해 해운회사는 후순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흉흉한 얘기도 업계에 떠돈다. 업계 관계자는 “해양수산부가 없어지고 국토해양부로 흡수되면서 우리 업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해운계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어 로비할 곳도 없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국토해양부가 대운하 문제로 청와대에 찍혀 해운업계 역시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한 중견 해운업체 사장은 “지금 위기는 해운업 자체가 아니라 금융회사로 인한 위기”라며 “선박금융이 완전히 끊겨버렸는데 어떻게 조선·해운 산업이 돌아갈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건 금융권이건 조금만 부축해주면 세계 7위의 국내 해운업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수출은 줄고, 따라서 해운 물동량도 줄고 있다. 기업마다 재고가 쌓이는 마당에 배를 띄울 일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지난 3~4년간 초호황 속에 선박은 대폭 늘어났다. 컨테이너가 배의 반을 채우지도 못하고 출항해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해운업계는 1조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하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조선업황이나 금융기관 사정을 볼 때 선박금융이 제대로 돌아가긴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해운업계가 꽁꽁 얼어버린 바다 위에 떠 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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