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joins.com/woodyhan/10207461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10년 전 얘기다.

 # 1.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한 게 1999년 9월이었다. 며 칠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국경절(10월 1일 건국기념일)이 다가왔다. 마침 국경절 앞 뒤로 일주일을 꼬박 쉰다는 발표가 나왔다. 많은 중국인들이 토요일, 일요일을 붙여 10일 정도를 놀았다. 이듬해 춘절(설)과 노동절(5월1일)도 1주일 휴가가 주어지더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은 지금도 토,일요일 까지 다 따지면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꼴로 생활한다. 

 중국은 왜 주민들에게 1주일 이상의 장기휴가를 세번씩이나 줄까?
 국민들을 사랑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룽지(朱鎔基)총리가 1999년 장기휴가를 만든 이유는 경제에 있다. '많이 놀려줄테니 쇼핑도 하고, 여행도 가고, 마음 껏 써라'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위해 고안한 내수 확대 정책의 하나다. 그래서 '할리데이 이코노미(假日經濟)'라는 말이 나왔다.

 # 2. 2001년 닝샤(寧夏)성 한 오지를 취재차 가야 했다. 닝샤의 성도(省都)인 인촨(銀川)에서 자동차를 타고 7~8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인촨에서 차를 타고 서 너시간을 달려도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시골에 왠 고속도로?' 더 이상한 건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없다는 점이다. 이날 도로에서 만난 자동차는 10여 대도 채 되지 않았다.

 도로건설 수요조사가 잘 못됐나?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동차 수요가 없을 줄 알면서도 도로를 뚫었다. 내역은 이렇다. 중국은 97년부터 8년 동안 매년 1500억 위안 안팎의 장기건설국채를 발행한다. 이 돈이 주로 쓰인 곳이 바로 도로건설이다. 특히 장쩌민(江澤民)주석이 주창한 서부개발에 따라 서부지역 도로가 집중적으로 뚫렸다. 자동차가 있건 없건, 그건 관여할 사안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돈이 내려왔고, 지방정부는 그 돈을 쓰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중국은 당시 온 나라에 건설 붐이 일었다.
 'China Under Construction'이었다.

      


 경기부양 덕택에 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000년들어 10%를 넘는 성장세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많았다. 1998년 시작된 투자 붐은 중국경제에 두고두고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과잉투자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지방정부의 투잉투자가 이어지면서 경제는 뜨거워져갔다. 어쩌면 지금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1998년부터 이미 잉태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부동산시장이 문제였다. 주룽지는 1998년 '상핀팡(商品房)제도'를 도입한다. 경기부양의 한 수단이 바로 부동산 산업이었다. 이 제도 도입으로 부동산시장이 형성되면서 돈이 부동산분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장에 거품이 끼었고, 그 버블은 10여년 만에 터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0071680 를 참고하시라.

 위기는 극복했으되, 경제는 왜곡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금 얘기다. 

 2008년 11월 9일 신화사는 원자바오 총리가 경기부양에 나섰다는 소식을 세계에 타전한다. 오는 2010년까지 4조 위안의 자금을 쏟아 부을 계획이란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GDP의 18%에 대당하는 수치치다. 중국 전문가들은 기존 사업을 합치면 모두 10조 위안의 재정자금이 향후 2년 동안 집중적으로 풀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자와 내수확대라는 두 장의 카드를 다시 뽑아든 것이다. 원자바오가 10년 전 주룽지 총리가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덕택에 중국경제는 이번 위기를 무리없이 극복할 수도 있겠다. 8~9%성장을 이루겠다는 중국정부의 성장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 경제에 꽁짜 점심이 있겠는가? 인위적인 성장이 지속될 수록 중국 경제는 더 꼬여갈 수밖에 없다. 1998년에 그랬듯 말이다. 
 
 중국이 직면한 상황은 10년전과 다르다. 10년전 중국이 직면한 위기는 '아시아 금융위기'였지만, 지금은 '세계 금융위기'다. 두 위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장이 있느냐, 없느냐다. 아시아 금융위기 시절에는 중국제품의 최대 수출 시장인 서방이 살아있었다. 세계공장(중국)이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됐었다. 시장이 받쳐줬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시장이 사라졌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로 중국수출은 급감하고 있다. 세계공장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받아줄 곳이 없다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내시장 역시 공급과잉으로 이미 포화상태다. 

 투자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체질의 근본적인 전환이 없다면 또 다른 경제왜곡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중국 식자층은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방법도 안다. 서비스 시장을 크게 확대하고, 국유은행과 국유기업의 산업 독점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체제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인가?
 아니다. 우리는 좀더 깊게 중국을 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4조위안의 부양책을 발표하며 10개 항목의 집중 투자분야를 제시했다. 단순히 건물을 짓고, 철도를 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촌투자,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투자, 산업구조조정 고도화 등를 위한 투자가 폭넓게 포함되어 있다. 단순한 돈 풀기식 경기부양이 아닌 경제 체질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이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질 지는 더 지켜 볼 일이다. 국제정세로 볼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이 'Again 1998'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중국은 각종 부양책을 통해 경제를 추스렸다. 재정을 풀었고, 부동산시장을 육성했고, 통화를 방출했다. 이에 힘입어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게 지난 10년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번은 세계경제위기다. 중국의 경기부양 발표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증시에 영향을 줄 호재가 되기도 했다. 무슨 얘기인가? 중국은 이번 위기를 잘 추스린다면 세계의 맹주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아시아의 맹주로 거듭났듯 말이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아시아 맹주로 등장한 중국,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 맹주로 등장할 것인가? 
 
 그 답은 10년 후 이맘 때 밝혀질 것이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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