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직장의 모습이다. 전문직이거나 규모가 큰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은 '절대로' 없다.

상황 1,

클라이언트나 상사의 부당한 요구나 지시에,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버린다.

상황 2,

사장의 독단적인 결정을 통보하는 자리에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그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상황 3,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여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얻은 아이디어로 기상천외한 반전을 통해 상황을 해결하고 모두를 감탄하게 한다.

상황 1,

은 아무리 부당한 경우라 하더라도 저렇게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응하다가는 좌천되어버리거나 인사고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확률이 크다. 또 '사회부적격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상황 2,

는 사장을 화나게 만들뿐더러 직속 상관의 입장까지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다. '저 친구는 누군가? 참 패기와 의욕 넘치는 친구로군, 허허허'라는 반응이 나올 확률은 단 0.001%도 되지 않는다.

상황 3,

은, 그런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거니와 설령 얻었다 할지라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규모화 된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상사나 고참은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라 여길 것이다. 자칫 타부서와의 알력관계나 세 싸움에 휘말릴 우려도 있다.

굳이 'No!'해야 한다면…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거절을 해야 할 일, 수긍하지 못할 일들이 종종 생긴다. 대부분은 그런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어느 냉소주의자는 '월급은 그런 상황을 잘 참고 견뎌내는 댓가'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직장은 군대가 아니다. 각자 자신의 맡은 업무가 있고, 주어진 환경 속에 가장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현장이 직장이며, 그 트레이닝 과정이 곧 커리어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싫은 것은 안하고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려면 너무나도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안다. 요령과 스킬이 필요하다. 불가능한 일, 불합리한 일, 부당한 일은 적당히 물리치고, 그러면서도 결코 게으르거나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유능해보여야 한다. 즉, 'No!'라고 말하지 않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거절을 하기 전에 점검할 7가지

1 "아닌데요"가 아니라 "그렇군요"다

젊은 직원, 여성, 경력이 적은 경우 흔히 상대의 반론이나 억지에 "아닌데요"라고 대응하는 일이 잦다. 컴플레인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작정하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건 아닌데요"라는 식의 대응은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안 좋은 대화가 길어지게 만들 뿐이다.

상대의 컴플레인에는 일단 "그렇군요" "아, 그렇습니까?" 등 내용을 듣고 있으며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답을 하도록 한다. 물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포커페이스(Poker face)는 기본.

2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라

상대가 화를 내고, 컴플레인 하고, 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또는 상황을 더 나쁘게 꼬아가고 있다. 납득하기 힘들고 부당하다는 감정이 먼저 솟구치더라도 일단 한번 더 생각해보자.

어떤 현상과 결과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부당한 인사, 경고, 컴플레인이 오기까지 어떤 히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견적이 예산을 넘어서, 상대의 입장이 난처해져서, 본인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등등 과정과 배경을 파악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도록 한다. 이유를 캐묻는 것이 아니라 파악하라.

3 우물쭈물하면 안된다

즉각적으로 No!라고 거절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유야무야 스리슬쩍 넘어가는 식은 최악이다.

상대는 답을 기다리다 거절당할 경우 더 곤란에 처하거나 분노하게 되기 때문이다.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잠깐만 생각해보고 답하겠다"라고 한 뒤 적합한 이유를 대고 거절을 해야 한다. 이 경우 거절의 답은 최대한 빨라야 좋다.

또, 이번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음 번에는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도록 한다. 물론 반드시 지킬 각오로.

4 이름과 직함을 자주 말하라

"팀장님 말씀대로" "고과장 입장에서는" "부장님으로서는 당연한 거죠" 등 상대의 이름과 직함을 자주 거론한다.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과 지금의 이 상황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고 믿는다. 또 거절을 당하더라도 자신이 무시당했거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낭패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적절한 추임새는 상대의 요구 사항을 좀 더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5 대안을 알려주라

무조건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다른 해결방안을 내세우며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닌데요"라든가 "그건 어렵겠는데, 어떻게 하죠"보다는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나 "알아봤는데,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정보를 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저도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물론 공수표를 날리고 종료하면 되는 상황인지, 나중에라도 리액션을 취해야하는 일인지는 case by case다.

6 선택할 수 있게 하라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확실한 답 하나가 나오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 경우 상대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방법을 써보자.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방법이고, 그 다음은 블라블라블라입니다. 또 하나는 이러저러한 방법이 있지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하시라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 정도 되면 이미 거절이 아니다. 거의 해결방안을 마련해준 셈이 된다.

7 짧게 끝내라

오뉴월 꽃타령도 하루이틀이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끌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짜증과 억지일 확률이 높아진다. 상대의 요구사항, 주변 정황을 파악하고 확인한 후 일단 그 상황을 종료시키고 대안을 찾은 다음 상황을 재개하라. 무성의하게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대안을 가지고, 앞서 설명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면 된다.

눈치 보지 말고 열정으로!

'에빌린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조지워싱턴대 교수 제리 B. 하비의 저서와 동명제목으로, 조직 역학에 대한 이론이다.

어느 일요일, 온 가족은 그저 TV 앞에 앉아 레모네이드나 마시며 한가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걸리는 에빌린이라는 엉뚱한 동네로 가 외식을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다.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은 먼 거리를 다녀오며 황금의 일요일 하루를 허비하게 된 셈인데,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튀기 싫어서' '다른 대안이 없어서' '거부할 권리가 없어서' 등 각자의 이유를 지녔다.

조직은 강제로 압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착각할 뿐이다. 동의하지 않으면서 동의하는 척하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장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이유다. 그런 자세는 우리를 모두 에빌린으로 가게 만든다. 사리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눈치를 보지 말고 열정으로 다가가야 한다. 반사적인 불평과 게으름이 아닌 명확한 이유와 절차를 갖춘 거절과 반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관료화의 틀 안에 들어 있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스킬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238호(10.08.03일자) 기사입니다]

Posted by trigger
,